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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갤러리1091

보성다원 1957년 대한다업 장영섭 회장은 6.25전쟁으로 황폐해진 차 밭을 일대 임야와 함께 인수하여 ‘대한다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활성산 자락 해발 350m, 오선봉 주변의 민둥산에 대단위 차 밭을 조성하였습니다. 또한 삼나무, 편백나무, 주목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동백나무 등 약 300여만 그루의 관상수와 방풍림을 식재하여 현재는 170여만 평의 면적 중 약 50여만 평의 차밭이 조성되어 580여만 그루의 차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대한다원 보성 녹차밭은 "국내유일의 녹차관광농원" (1994년 관광농원 인가)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수십 년 전 차밭 조성과정에서 방풍림으로 식재한 삼나무는 다원의 명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2009. 2. 4.
덕유산 상고대 2009. 2. 4.
이슬속으로 이슬은 바람이 약하거나 거의 불지 않는 맑은 날 밤에 생성되는데 지면의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흰 서리가 생성된다(→ 서리). 이슬이 맑은 날 밤에 생성되는 이유는 밤에는 노출된 지표면이 복사에 의해 열을 빼앗기기 때문이다.손실된 열이 물체 내부로부터 나오는 열의 전도에 의해 충분히 보충되지 못하면 물체 표면은 냉각된다. 풀잎·나뭇잎·꽃잎 등 대부분의 물체는 공기보다 더 좋은 복사체이므로 밤에는 공기보다 더 많이 냉각된다. 이러한 찬 표면은 그 주위에 있는 공기를 냉각시키고, 만일 공기가 충분한 양의 수증기를 함유하고 있다면 공기는 이슬점 이하로 냉각된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날 때 대기 중의 수증기는 노출된 물체 표면에서 응결된다. 이슬의 형성은 수증기의 확산에 의해 계속된다. 식물이 있는 지면에서 수증.. 2009. 2. 3.
덕유산설경 중년은 많은 색깔을 갖고 있는 나이 이다. 하얀 눈이 내리는 가운데서도 분홍 추억이 생각나고 초록이 싱그러운 계절에도 회색의 고독을 그릴 수 있다. 2009. 2. 2.
태백산 설경 당신과 나의 사랑이 눈꽃으로 필 때/이채 당신과 나의 사랑이 눈꽃으로 필 때 나는 한번도 본 적 없는 하얀 꽃속에서 햇살같은 그리움을 보았습니다 당신의 볼처럼 부드러운 햇살이 반짝거리며 꽃잎에 닿자 나도 당신의 눈꽃이 되어 한참을 피었습니다 당신과 나의 사랑이 눈꽃으로 필 .. 2009. 2. 2.
태백산설경 . 내가 받은 것은 새가슴에 겨두세요 미움은 물처럼 흘러 보내고 은혜는 황금처럼 귀히 간직하세요. 2009. 2. 2.
황산2 찬란한 태양이 황산의 희망찬 하루를 여는 동쪽 이목마을 흰재에서 남으로 발걸음을 움직이니 웅크린 호랑이가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듯한 일신의 성산(聲山 맹호출림형 길지)을 맞대고, 봉의 정수리에서 내려다 보이는 고천암(庫千岩)은 5천 개의 창고가 설 곳이라 하여 이름 지어진 천혜의 땅으로 이곳의 청정 쌀은 하늘과 땅의 정기 그리고 농부의 정성이 깃들여진 황산의 근원으로 55만 평의 갈대숲과 붉게 물든 석양이 어우러진 겨울철새의 몸부림으로환상을 뛰어넘는 황홀경에 취해 서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그 옛날 불가마의 곳집(화염)에 염부의 고된 삶이 묻어 있고 학동 염소를 상견하고 뒤편의 성스러운 땅 원호 국사봉은 생명을 잉태하는 본초로 그 옛날 천신(天神) 제를 지냈으며, 교동 옥녀봉으로 내려와 송호명당골로 돌아갔으니.. 2009. 2. 2.
황산 황산은 중국의 화동지역 안휘성 제일 남쪽 끝에 위치해 있으며 안휘성을 흘러지나가는 양자강 이남에 위치해 있습니다. 면적은 154km2 이고 황산 풍경구 중심위치는 동경 118도 11분, 북위 30도 10분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황산은 중국인의 선조 헌원 황제가 이산에서 도를 닦으면서 황산의 기를 받아 신선이 되였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명황이 이산을 황산이라 고쳤고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황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합니다. 또한 황산은 중국 10대 명승지 가운데 유일한 산으로써 1990년 12월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자연유산으로 인정되었다 합니다. 2009. 2. 2.
용비지 봄 서산의 삼화목장 인근에 있는 용비저수지 주위에는 매년 4월 중순이면 벚꽃이 만발하고 그 벚꽃이 저수지에 반영으로 나타나 아름다운 봄 풍경이 연출 됩니다. 또 부근에는 서산 목장의 벚꽃도 유명하여 촬영을 할 수있다 2009. 1. 31.
위양지 양양지(陽良池 : 일명 위양못) : 경상남도지정 문화재자료 제167호 부북면 위양리의 동쪽에 있는 양양지(陽良池)는 신라시대에 축조된 제방(堤防)의 둘레가 4.5리(里)에 달하는 저수지였으나 원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지금은 수리구역 (水利區域)의 제방으로 바뀌어 제방 길이가 547척(尺), 너비 68척(尺)으로 줄어 들었다. 양양제(陽良提) 제방 위에는 안동권씨(安東權氏) 일문의 제숙소(薺宿所)인 완재정(宛在亭)이 있는데 원래는 못 가운데 다섯 개의 섬이 있었으며, 이 저수지의 물로 아래쪽에 있는 넓은 들판에 물을 대어 농사를 지었고, 제방위에 각종 나무를 심어 인위적으로 풍치(風致)를 가꾼 명소(名所)였던 것 같다. 밀주구지(密州舊誌) "위양동 조(位良洞 條)에 의하면 인조 12년(1634년)에 임진왜란.. 2009. 1. 31.
궁남지풍경 . . . . . . . . . . . . . . . 부여 남쪽에 위치한 백제의 별궁 연못이다. 백제 무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궁궐의 남쪽에 연못을 팠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궁남지라 부른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20여 리나 되는 긴 수로를 통해 물을 끌어들였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연못 가운데에 방장선산을 상징하는 섬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로와 물가·연못 속의 섬이 어떤 모양으로 꾸며져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못의 중앙부에 석축과 버드나무가 남아있어 섬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주변에서 백제 토기와 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연못의 규모 또한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당시에 뱃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크기를 짐작할 뿐이다. 고대 중국사람들은 동해바다 한가.. 2009. 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