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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와 '곰나루'
공주: 백제 때 곰나루를 '곰내'라고도 했는데, 그것을 '웅천(熊川)'이라고 적었다.
후기 신라 때 서기 757년(경덕왕 16년)에 '웅주(熊州)'라고 한 것을 '곰주'라고 부르게 되었다. 서기 940년(고려 태조 23년)에 '곰주'를 한자로 적기 위하여 '공주
(公州)'라고 했다.
한편으로, 공주의 진산인 '공산'이 있는 고을이어서 '공주'라고 한다는 설도 있다. ('공산'에 '공산성'ㆍ'웅진성'이 있다.)
곰나루: 공주의 첫 이름이 ' '(곰나루)였는데, 그것을 '웅진(熊津)'이라고 적었다. '곰나루'가 '고마나루'로 변했다.
진단학회《한국사》(1959∼1963) 제1권 총설 '민족의 구성'란에 "고마, 개마는 上, 大, 神, 神聖을 뜻하는 국어의 ' , 검, 금', 일본말의 '가미, 가무', 아이누말의 '가무이'와 같은 말"이라고 했듯이 ' '은 우리 나라와 일본에서 '감, 검, 곰, 금, 김, 가마, 가미, 개마, 고마, 구마, 기미…' 들로 변했다. 그러므로, 'ㆍ곰나루ㆍ고
마나루'는 "큰 나루", "거룩한 나루"라는 뜻이다. 나무꾼이 곰 처녀와 살았다는 것은 뒷사람들이 꾸며 붙인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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