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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위기는 나의 위기다!
건너편 집에 불이 났다. 동내 사람들이 몰려든다.
소방차가 도착해 진화에 나서지만 불길은 잡히지 않는다.
“어이쿠! 정말 대단한 불이네.” 사람들은 ‘불구경’을 하면서 감탄한다.
어떤 사람은 소방관의 위험천만한 인명 구조에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
집주인은 인생을 포기한 것 같은 표정을 한다.
그러나 불구경하는 사람에게는 ‘구경거리’일 뿐이다.
물난리가 날 때마다 구경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재난 구경만큼 생생한 재미가 없다고 말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의 분노를 편집 없이 볼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의 일은 재미있을 수도 있다.
위험에 처한 것이 우리가 아닐 때는 말이다.
불경기에 대폿집에 가면 자주 듣는 고함 소리가 있다.
“그래” 거꾸러져라. 거꾸러져. 그 동안 까불던 놈들,
다 망해 버려야 해. “ 그렇게 우리가 남의 불행을 즐기는 사이 불행의 불이 우리 쪽으로 옮겨 붙기 시작한다.
소방관 들이 실패하자, 불은옆집으로 옮겨 붙은 데 이어,
그다음 집을 성난 파도처럼 차래로 덮친다. 그리고 그 옆의 우리 집까지……, 뒤늦게 세간 하나라도 더 건지려고 부리나케 움직이지만 이미 늦었다.
갑자기 불어난 물이 하천에서 물 구경하던 사람들을 급류로 몰아쳐 쓸어간다. 어떻게 해볼 수도 없이 순식간에 떠내려가기 시작한다.
회사에 출근했더니 주요 거래처가 부도를 냈다고 한다.
커다란 계약들이 연이어 백지화된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보니 인부들만 왁자지껄 모여 있다.
아무리 기다려도 건설현장으로 인력을 실어 나르는 승합차는 오지 않는다. 공사 중단이다.
어젯밤 대폿집에서 왜 그런 말을 뱉어냈던 것일까 후회해보지만 이미 늦었다.
이상하게도 그런 소원은 대충 빌어도 이루어진다. 21세기 경제는 거미줄 같은 신경망을 통해 긴밀하게 엮여져 있다.
미국에서 중대한 일이 생기면 불과 몇 분 만에 텔레비전 화면의 자막으로 나타난다.
중국에서 사건이 일어나자, 30분도 안 돼 우리나라 증시가 춤을 춘다. 우리나라 뉴스에 세계 곳곳의 투자자들이 울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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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남의 집 불구경을 즐기다가
피할 기회를 놓쳐버린다. 우리들 대부분은
어쩔 수 없는 어리석은 인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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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우리도 위기에 몰린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지금의 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남의 위기가 곧 나의 위기다.
출처 [내겨가는 연습] 지식 생태학자 유영만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