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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갤러리/가을 힐링

오어사추경

by 晴景 조상규 2013.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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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어사는 『삼국유사』에도 그 이름이 나오는데, 신라 진평왕(眞平王, 재위 579~631) 때 자장 율사가 창건하여 처음에는 항사사(恒沙寺)라고 하였다.

그리고 창건이후 혜공(惠空)·원효(元曉)·자장(慈藏)·의상(義湘) 등이 주석하여 '신라 사성(四聖)'이 머물렀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특히 혜공과 원효 스님에 대해서는 절 이름과 관련된 설화가 전한다.

 

옛날 오어사에서 원효 대사와 혜공 대사가 수도하고 있었다.

하루는 둘이서 계곡 상류에서 놀다가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서로 법력을 시험하여 보고자 하여, 고기를 낚아 다시 살리는 재주를 겨루었다.

그런데 둘의 실력이 막상막하여서 좀체 승부가 나지 않다가 딱 1마리 차이로 승부가 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중 고기 한 마리를 놓고 서로 자기가 살린 고기라고 주장하였다고 한 데서 '나 오(吾)'와 '고기 어(魚)'자를 써서 오어사(吾魚寺)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기를 놔준 곳이 지금 오어사 앞에 있는 오어지(吾魚池)이다.

이 이야기는 일연 스님이 지은 『삼국유사』에 나와 있다. 일연 스님은 1264년에 오어사에 머문 적이 있었으므로

당시까지 전해오는 이야기를 채록하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뒤의 연혁은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1995년 오어지에서 발견된 동종이 명문을 통해 고려 말인 1216년(고종 3)에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으므로

이 기간에 이 같은 우수한 동종을 조성할 정도로 사세가 컸다는 것은 짐작되지만, 고려시대의 연혁에 관한 다른 문헌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조선에서는 1736년(영조 12) 화재로 전 당우가 소실되었으나 1741년 치철(致哲) 스님 등이 대중의 힘을 모아 중건하였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여러 계를 조직해 사찰의 중수 및 운영에 보탬이 되도록 한 것이 눈에 띤다.

1811년 산내암자인 의상암에서 출발한 등촉계(燈燭契)를 비롯해서 1823년(순조 23) 염불계(念佛契)를 조직해 사찰을 중수하였으며,

1864년(고종 1)에도 칠성계(七星契)를 만들어 사찰 중수에 힘을 모았다.

이 같은 계의 조직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도 이어져 이 해에 나한전을 중수할 때 계가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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